밀워키 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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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밀워키 벅스는 1968년 창단된 NBA 팀으로, 1971년과 2021년에 NB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카림 압둘자바 시대를 거쳐 시드니 몬크리프 시대를 거치며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자리 잡았지만, 1990년대 침체기를 겪었다. 2000년대 초 레이 앨런, 글렌 로빈슨, 샘 카셀의 '빅3' 시대를 거쳐 야니스 아데토쿤보를 중심으로 팀을 재건, 2021년에 50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현재까지 18번의 디비전 우승, 3번의 컨퍼런스 우승을 기록했으며, 오스카 로버트슨, 카림 압둘자바 등 다수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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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워키 벅스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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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밀워키 벅스 |
영문 명칭 | Milwaukee Bucks |
연고지 | 위스콘신주 밀워키 |
홈 경기장 | 파이서브 포럼 |
창단 연도 | 1968년 |
소속 리그 | NBA |
콘퍼런스 | 동부 콘퍼런스 |
디비전 | 센트럴 디비전 |
색상 | 굿 랜드 그린 크림 시티 크림 그레이트 레이크스 블루 검정 하양 |
스폰서 | 모토로라 모빌리티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구단 정보 | |
구단주 | 웨스 에든스 지미 해슬럼 제이미 디난 마이크 파시텔리 |
사장 | 피터 페이긴 |
단장 | 존 호스트 |
감독 | 닥 리버스 |
NBA G 리그 제휴팀 | 위스콘신 허드 |
우승 기록 | |
리그 우승 | 2회 (1971, 2021) |
콘퍼런스 우승 | 3회 (1971, 1974, 2021) |
디비전 우승 | 19회 (1971, 1972, 1973, 1974, 1976,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2001, 2019, 2020, 2021, 2022, 2023, 2024) |
NBA 컵 우승 | 1회 (2024) |
영구 결번 | |
유니폼 |
2. 역사
1950년대에 밀워키 호크스가 밀워키에서 4년간 경기 후 이전했다. 10여 년 후, NBA는 웨슬리 파바론과 마빈 피쉬먼이 설립한 기업에 팀 창설을 승인, 1968년에 밀워키 벅스가 리그에 참가했다. 팀명은 공모를 통해 모인 이름들 중에서 수사슴을 의미하는 "벅스"가 선택되었다. 같은 해에 피닉스 선스도 설립되었다.
==== 1968-1975: 카림 압둘자바 시대 ====
1968년 1월 22일, NBA는 웨슬리 파발론과 마빈 피시먼이 이끄는 밀워키 프로페셔널 스포츠 앤 서비스(Milwaukee Pro)에게 프랜차이즈를 부여했다.[11] 팀 명칭은 팬 콘테스트를 통해 결정되었는데, 4만 명 이상의 팬이 참여했다.[12] 팬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로빈스'였지만, 콘테스트 심사위원들은 흰꼬리사슴을 의미하는 '벅스'를 선택했다. R. D. 트레빌콕스는 벅스가 "활기차고, 점프를 잘하며, 빠르고 민첩하다"고 설명하며 새 차를 받았다.[13]
10월에 벅스는 밀워키 아레나에서 시카고 불스를 상대로 첫 NBA 정규 시즌 경기를 치렀다. 벅스의 첫 시즌은 27승 55패로 부진했지만, 시즌 종료 후 피닉스 선스와의 동전 던지기에서 승리하며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 UCLA의 루 알신더를 영입했다.[14] 이후 카림 압둘자바로 개명한 알신더는 데뷔 시즌에 NBA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팀을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이끌었다.[14]
1969-70 시즌에 56승 26패를 기록하며 뉴욕 닉스에 이어 리그 2위를 차지했다. 이는 창단 첫 시즌의 부진을 크게 만회한 것이었다. 벅스는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꺾었지만, 동부 결승에서 닉스에게 패했다.
1970-71 시즌 벅스는 신시내티 로열스에서 오스카 로버트슨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벅스는 66승 16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 시즌을 마감했고, 이는 당시 NBA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승리이자 여전히 구단 기록이다. 정규 시즌 동안 벅스는 당시 NBA 기록인 20연승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서 12승 2패를 기록하며 1971년 4월 30일 볼티모어 불리츠를 꺾고 창단 3년 만에 NB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북미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단기간 리그 챔피언십 우승 기록 중 하나이다.
벅스는 1970년대 전반기에 강팀으로 군림했다. 1972년, 알신도어는 공식적으로 이름을 카림 압둘자바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벅스는 3년 연속 디비전/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지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패했다. 1973년에는 NBA 팀 최초로 3년 연속 60승 시즌을 기록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플레이오프에서 일찍 탈락했다. 1974 NBA 파이널에서 보스턴 셀틱스와 다시 만났으나, 7차전 접전 끝에 패배하며 두 번째 우승에는 실패했다. 6차전에서 압둘자바는 연장 2차전에서 "스카이 훅" 슛을 성공시키며 명승부를 연출했지만, 결국 7차전에서 패배하며 2021년까지 NBA 파이널에 다시 진출하지 못했다.
1974-1975 시즌이 시작되면서 압둘자바는 손 부상을 입었고, 다른 부상과 겹치면서 팀은 38승 44패로 디비전 최하위로 떨어졌다. 시즌이 끝나갈 무렵, 압둘자바는 더 큰 시장에서의 활동을 원하며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벅스는 엘모어 스미스, 주니어 브리지먼, 브라이언 윈터스, 데이비드 마이어스를 받고 압둘자바를 레이커스로 보내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 1976-1990: 시드니 몬크리프 시대 ====
카림 압둘자바의 이적 이후, 벅스는 여러 시즌 동안 전환기를 겪었지만, 1976년 돈 넬슨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15] 1977년 드래프트에서 벅스는 1라운드 지명권을 3개나 가지고 있었으며, 켄트 벤슨, 마르케스 존슨, 어니 그런펠드를 지명했다. 존슨은 이후 몇 년 동안 벅스의 핵심 선수가 되었고, 1979년에는 신인 시드니 몬크리프가 데뷔했다.[15] 돈 넬슨은 벅스에서 두 번의 NBA 올해의 코치상을 수상했는데, 두 번 모두 팀이 디비전 우승을 차지한 1983년과 1985년이었다.
1977년 10월 18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한 압둘 자바는 경기 중 벤슨을 주먹으로 가격하여 손을 다쳤다.[15] 이 사건으로 압둘 자바는 NBA로부터 벌금을 부과받고 20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벅스는 1980년 압둘 자바의 이탈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베테랑 센터 밥 라니에를 영입하고 벤슨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로 트레이드했다. 그 결과, 벅스는 1980년 미드웨스트 디비전 타이틀을 획득했다. 시애틀에게 준결승에서 패배한 후, 벅스는 동부 컨퍼런스의 센트럴 디비전으로 이동했다.
벅스는 시드니 몬크리프, 마르케스 존슨, 폴 프레시, 주니어 브리지먼의 뛰어난 활약과 크레이그 호지스, 테리 커밍스, 리키 피어스, 잭 시크마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 시애틀 슈퍼소닉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합류하면서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센트럴 디비전에서 6번의 연속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11년 동안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벅스는 NBA 파이널에 다시 진출하지 못했고, 매번 보스턴 셀틱스 또는 세븐티식서스에 의해 탈락했다.
197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벅스의 색상은 숲 녹색, 짙은 빨강, 흰색이었다. 1978년에 유니폼에 다양한 녹색 음영을 추가했고, 1985년에는 팀 색상에서 빨강을 제거했다.
1980년대 벅스는 1983년에 NBA 역사상 처음이자 2003년까지 유일하게 7전 4선승제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스윕한 팀이 되었다. 또한 마이클 조던을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만나 승리했으며, 1987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줄리어스 어빙의 마지막 NBA 경기를 개최했다.
1985년, 구단주 짐 피츠제럴드는 건강 문제와 투자자들의 이탈로 인해 팀을 허브 콜에게 매각했다. 밀워키의 사업가이자 미래의 미국 상원의원인 콜은 타지 투자자들이 팀을 인수하여 밀워키에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벅스를 인수했다.
==== 1990-1998: 침체기 ====
1990년대 밀워키 벅스는 프랭크 햄블렌, 마이크 던리비, 크리스 포드 감독 아래 평범한 성적을 거두며 침체기를 겪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7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구단 역사상 최장기간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기록을 세웠다. 1994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글렌 로빈슨을 지명했고, 1996년에는 드래프트 당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신인 레이 앨런을 영입했다. 두 선수 영입에도 불구하고, 팀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7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1993년, 구단 창립 25주년을 맞아 로고와 유니폼을 개편했다. 색상은 녹색, 보라색, 은색으로 변경되었고, 만화 같던 이전 사슴 로고는 더 사실적인 로고로 대체되었다.
1997년, 벅스는 올스타 포워드 빈 베이커를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보내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가드 테렐 브랜든과 포워드 타이론 힐을 영입했다. 또한 대니 포트슨, 조니 뉴먼, 조 울프를 덴버 너게츠로 보내고 센터 어빈 존슨을 받았다. 1997-98 시즌에도 36승 46패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998년 NBA 드래프트에서 벅스는 전체 9순위로 디르크 노비츠키를 지명했지만, 로버트 트레이러와 맞바꿔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했다. 이후 조지 칼 감독을 영입하며 팀 토마스, 샘 카셀을 더해 팀의 성적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 1998-2003: 빅3 시대 ====
1998년,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NBA 파이널로 이끌었던 베테랑 코치 조지 칼을 영입하며 반등을 노렸다.[17] 조지 칼 감독과 단장 어니 그런펠드의 지도 아래, 팀 토마스, 샘 카셀과 같은 선수들을 꾸준히 영입했다. 레이 앨런, 카셀, 글렌 로빈슨으로 구성된 '빅3'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며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떠올랐으며, 이 시기는 많은 벅스 팬들에게 "Let It Fly" 시대로 알려지게 되었다.[17]
2000-2001 시즌 52승을 거두며 15년 만에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고, 샬럿 호네츠를 꺾고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7차전에서 패배했다.[17]
2001-02 시즌 초, 앤서니 메이슨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하려 했으나, 오히려 팀 케미스트리가 붕괴되며 시즌 중반 4번 시드에서 부진에 빠졌고, 결국 시즌 마지막 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패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17] 시즌 후, 글렌 로빈슨이 애틀랜타 호크스로 트레이드되었다.[17]
2002-03 시즌 동안, 레이 앨런과 로널드 "플립" 머레이를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트레이드하고 게리 페이튼과 데스몬드 메이슨을 영입했다. 이 트레이드로 마이클 레드가 더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했고, 페이튼의 합류로 42승 40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뉴저지 네츠에게 패했다. 오프시즌에 샘 카셀과 어빈 존슨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트레이드되었고, 페이튼은 자유 계약으로 팀을 떠났으며, 조지 칼 감독 또한 해임되면서 빅3 시대는 막을 내렸다.
==== 2003-2013: 마이클 레드와 브랜든 제닝스 시대 ====
2003-04 시즌 이후, 마이클 레드가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18] 2005년 NBA 드래프트에서 벅스는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센터 앤드루 보것을 선발했다.[18] 보것은 밀워키에서의 처음 4년 동안 기복과 부상에 시달렸지만, 점차 벅스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18]
2006년, 팀은 40승 42패로 디비전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2006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1승 4패로 패했다.[18] 3월에는 6월에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었던 단장 래리 해리스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발표했고,[19] 4월에는 존 해먼드를 새로운 단장으로 고용했다.[19] 또한, 래리 해리스가 고용한 마지막 헤드 코치였던 래리 크리스토비악이 해임되고 스캇 스카일스가 헤드 코치가 되었다.
2008년 6월 26일, 벅스는 뉴저지 네츠로부터 리처드 제퍼슨을 영입하고, 2008년 NBA 드래프트에서 조 알렉산더를 8순위로 지명했다.[20]
2009년 NBA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벅스는 브랜든 제닝스를 지명했다. 시즌 중반, 벅스는 하킴 워릭을 시카고 불스로 보내고 존 살몬스를 영입했다.[21] 살몬스는 벅스 유니폼을 입고 경기당 평균 19.9득점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제닝스의 활약, 앤드류 보것의 성장, 에르산 일야소바의 기량 향상, 그리고 살몬스 트레이드는 팀을 플레이오프 경쟁자로 만들었다.[21] 벅스는 2010년 4월 6일 시카고 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21]
존 앤더슨에 의해 "Fear the Deer"라는 문구가 만들어졌고,[22][23] 이는 NBA 플레이오프에서 팀의 전투 구호가 되었다. 벅스는 정규 시즌을 46승 36패로 마쳤고, 2010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애틀랜타 호크스에게 패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24]
2010-11 시즌, 벅스는 동부 컨퍼런스에서 9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24] 2012년 3월 13일, 벅스는 보것과 스티븐 잭슨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트레이드하고 몬타 엘리스, 에크페 유도, 콰미 브라운을 받았다. 2012년 NBA 드래프트 전에는 1라운드 지명권, 숀 리빙스턴, 존 브록먼, 존 로이어를 휴스턴 로케츠로 보내고 1라운드 지명권과 사무엘 달렘버트를 받았다. 2012년 드래프트에서 벅스는 도론 램과 존 헨슨을 지명했다.
2012-13 시즌 32경기가 끝난 후, 벅스는 스캇 스카일스 감독을 해고하고 짐 보일란을 임시 감독으로 선임했다. 벅스는 38승 44패를 기록하며 8번 시드로 2013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마이애미 히트에게 4대0으로 완패했다.
==== 2013-현재: 야니스 아데토쿤보 시대 ====
2014년 4월 16일, 오랜 기간 구단주였던 허브 콜이 벅스를 뉴욕에 기반을 둔 자산가 웨슬리 에덴스와 마크 라슬리에게 5억 5천만 달러에 매각하는 데 합의했다. 신임 구단주는 팀을 밀워키에 남기고 1억 달러로 새 아레나를 건설할 것으로 보인다[87]。NBA의 승인은 한 달 뒤인 5월 16일에 내려졌다.[88]
새 구단주들은 리그 최악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 팀을 재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우선 브루클린 네츠의 헤드 코치였던 제이슨 키드를 2015년과 2019년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과 맞바꿔 헤드 코치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2014년 NBA 드래프트에서 듀크 대학교의 자바리 파커를 지명하는 등, 체제를 정비했다. 새롭게 태어난 벅스는 전 시즌 15승에 그쳤던 팀이 11월에 10승을 기록했다. 그 후 12월 16일 피닉스 선스와의 경기에서 벅스 재건의 주축이었던 자바리 파커가 왼쪽 무릎 전방 십자 인대 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되는 사고를 겪었고[89], 또한 래리 샌더스가 문제를 연발하고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전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야니스 아데토쿤보, 크리스 미들턴 등 젊은 선수들이 분전하여 2015년 2월 11일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전 시즌의 두 배인 승리(30승)를 기록했다. 올스타전 이후 고전했지만, 4월 11일 브루클린 네츠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2009-10 시즌 이후 시즌 40승을 거두며 2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시카고 불스와의 1라운드 대결은 3연패 후 2연승을 거뒀지만, 2승 4패로 아쉽게 패했다.
그렉 먼로를 영입하며 팀 전력 강화에 힘썼지만, 2015-16 시즌 벅스는 초반 부진을 겪었다. 11월 14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의 경기에서는 2차 연장전 끝에 108-105로 8연승 중이던 캐벌리어스에게 승리했고, 12월 11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경기에서는 전 시즌 NBA 챔피언에게 108-95로 승리하여 개막 24연승 중이던 워리어스의 쾌속 질주를 막는 대이변을 연출[90][91]했지만, 결국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3월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으며 33승 49패로 시즌 초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를 기록했다.
2016-17 시즌은 크리스 미들턴이 개막부터 결장하는 어려움 속에서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새로운 에이스로 급성장했고, 루키 말콤 브로그던도 식스맨으로 분투했다. 개막부터 끈기 있는 경기를 펼치며, 2017년 1월 10일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경기에서 적지인 AT&T 센터에서 109-107로 승리하며 2011-12 시즌 이후 스퍼스전 승리를 기록했지만, 이 스퍼스전 이후 부진에 시달렸다. 그러나 2월에 자바리 파커가 다시 왼쪽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이후 컨디션을 회복했고, 아데토쿤보는 2004년의 마이클 레드 이후의 NBA 올스타 게임 출전 멤버로 선정되었다. 팀은 42승 40패로 2009-10 시즌 이후 5할 이상의 승률로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에서는 1라운드에서 토론토 랩터스에게 2승 4패로 졌지만, 쏜 메이커가 시즌 후반부터 선발로 기용되는 등, 알찬 시즌이 되었다.
2017-18 시즌은 시즌 초반인 2017년 11월 10일에 그렉 먼로와의 트레이드로 에릭 블레드소를 영입했고[92], 2018년 1월 22일에 제이슨 키드가 헤드코치에서 해임되는 등의 일이 있었다[93]. 결국 정규 시즌은 44승 38패로 컨퍼런스 7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컨퍼런스 2위의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최종 7차전에서 패배하며 1회전에서 탈락했다[94].
2018-19 시즌은 홈 구장을 파이서브 포럼으로 옮겨 시작했다. 이 해부터 지휘봉을 잡은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은 야니스의 골밑 결정력을 활용하기 위해 슈터들을 많이 배치하는 전술을 펼쳤다. 미들턴, 블레드소에 더해 3년 차인 말콤 브로그던, 새로 합류한 브룩 로페즈가 3점 슛을 많이 던지는 새로운 팀은 예상 이상으로 잘 굴러갔고, 개막 7연승 이후에도 순조롭게 승리를 거듭했다. 가능성을 느낀 팀은 이 해에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시즌 중에도 조지 힐, 니콜라 미로티치를 영입하여 전력을 더욱 강화했다. 후반에 한 번 2연패를 기록했지만, 그 외에는 한 번도 연패하지 않고, 이 해 리그 최다 승인 60승 22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연간 60승은 1980-81 시즌 이후 38년 만의 좋은 성적이다. 또한, 이 해 올스타에서는 야니스가 캡틴으로 선정되었고, 미들턴도 처음 출전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도 쾌진격은 이어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4승 0패로 꺾고 18년 만에 플레이오프 1회전을 통과했다. 이어진 보스턴 셀틱스와의 2회전에서는 첫 경기를 홈에서 패했지만, 곧바로 전열을 정비하여 4연승하며 4승 1패로 승리, 전년도의 설욕을 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벅스는 토론토 랩터스와의 결전에 임했다. 1차전은 로페즈가 29득점을 올렸고, 2차전은 어산 일야소바가 활약하며 2연승으로 시작했다. 원정인 3차전에서도 후반에 따라붙었지만, 자유투를 많이 실패한 것이 발목을 잡아 재연장 끝에 패배했다. 여기서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기세를 잃은 벅스는 4차전에서 대패했고, 홈에서 열린 5차전도 졌다. 지면 끝나는 6차전은 후반까지 우위를 점했지만, 3쿼터 후반의 15점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했다. 결과적으로 2연승 후 4연패를 기록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탈락했다.
2019-20 시즌도 개막부터 선두를 독주하며, 2년 연속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하며 의기양양하게 플레이오프에 임했다. 8월 26일 제이콥 블레이크 총격 사건에 항의하여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이콧했다[95]. 이후 1회전에서 올랜도 매직을 4승 1패로 물리쳤지만, 준결승에서 정규 시즌부터 상성이 좋지 않았던 마이애미 히트에게 3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4차전에서 야니스가 부상으로 퇴장. 이 경기는 미들턴의 활약으로 연장전 끝에 간신히 승리했지만, 야니스가 결장한 5차전에서 패배, 작년의 설욕을 하려던 플레이오프는 너무 이르게 막을 내렸다.
예상 밖의 조기 탈락으로 야니스의 이적 등도 소문이 돌면서, 프런트는 야니스를 붙잡기 위해 보강을 펼쳤다. 플레이오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블레드소를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보내고, 펠리컨스에서 드류 할러데이를 영입했다. FA에서도 바비 포티스나 브린 포브스 등을 영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러한 보강으로 야니스는 2020-21 시즌 개막 직전에 5년 간의 슈퍼맥스 계약을 맺으며 계약을 연장했다. 시즌 중반에는 P. J. 터커를 영입하고 할러데이와도 맥스 계약을 맺어 야니스, 미들턴, 할러데이의 빅3를 중심으로, 야니스의 전성기에 모든 것을 거는 형태가 되었다. 이 시즌은 컨퍼런스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1회전에서 전년도에 패한 히트와 다시 대결했다. 오버타임까지 가는 1차전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일방적인 전개가 이어졌고, 4연승으로 전년도의 설욕을 했다. 컨퍼런스 준결승에서는 케빈 듀란트, 카이리 어빙, 제임스 하든의 빅3를 보유한 브루클린 네츠와 대결했다. 원정 2연패로 시작했지만 홈에서 열린 3차전, 4차전에서 연승했다. 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졌고, 오버타임 끝에 승리했다. 컨퍼런스 결승에서는 애틀랜타 호크스와 대결. 4차전에서 야니스가 무릎 부상을 입어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남은 멤버들이 분전하여, 2승 2패에서 야니스 없이 5차전, 6차전을 연승하며 NBA 파이널 진출을 결정지었다. 파이널에서는 첫 우승을 노리는 피닉스 선스와 대결. 야니스가 복귀했지만, 적지에서 2연패로 어려운 시작을 했다. 그러나 거기서 3연승하며 단숨에 챔피언십까지 1승만을 남겨두었고, 홈에서 열린 6차전에서 야니스가 50득점 14리바운드 5블록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105-98로 승리했다. 50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thumb|right|130px|야니스 아데토쿤보
==== 2013-2018: 제이슨 키드 감독 ====
2013년 6월 27일, 밀워키 벅스는 2013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5순위로 그리스 출신 포워드 야니스 아데토쿤보를 지명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29]
2014년 4월 16일, 벅스의 오랜 구단주였던 허브 콜은 팀의 과반수 지분을 뉴욕에 기반을 둔 억만장자 웨스 에덴스와 마크 라스리에게 5억 5천만 달러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콜은 팀의 상당한 소수 지분을 유지했다. 새로운 구단주들은 팀을 밀워키에 남겨둘 것으로 예상되었고, 구단을 위한 새로운 경기장 건설에 1억 달러를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25] NBA 이사회 승
2. 1. 1968-1975: 카림 압둘자바 시대
1968년 1월 22일, NBA는 웨슬리 파발론과 마빈 피시먼이 이끄는 밀워키 프로페셔널 스포츠 앤 서비스(Milwaukee Pro)에게 프랜차이즈를 부여했다.[11] 팀 명칭은 팬 콘테스트를 통해 결정되었는데, 4만 명 이상의 팬이 참여했다.[12] 팬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로빈스'였지만, 콘테스트 심사위원들은 흰꼬리사슴을 의미하는 '벅스'를 선택했다. R. D. 트레빌콕스는 벅스가 "활기차고, 점프를 잘하며, 빠르고 민첩하다"고 설명하며 새 차를 받았다.[13]10월에 벅스는 밀워키 아레나에서 시카고 불스를 상대로 첫 NBA 정규 시즌 경기를 치렀다. 벅스의 첫 시즌은 27승 55패로 부진했지만, 시즌 종료 후 피닉스 선스와의 동전 던지기에서 승리하며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 UCLA의 루 알신더를 영입했다.[14] 이후 카림 압둘자바로 개명한 알신더는 데뷔 시즌에 NBA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팀을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이끌었다.[14]
1969-70 시즌에 56승 26패를 기록하며 뉴욕 닉스에 이어 리그 2위를 차지했다. 이는 창단 첫 시즌의 부진을 크게 만회한 것이었다. 벅스는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꺾었지만, 동부 결승에서 닉스에게 패했다.
1970-71 시즌 벅스는 신시내티 로열스에서 오스카 로버트슨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벅스는 66승 16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 시즌을 마감했고, 이는 당시 NBA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승리이자 여전히 구단 기록이다. 정규 시즌 동안 벅스는 당시 NBA 기록인 20연승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서 12승 2패를 기록하며 1971년 4월 30일 볼티모어 불리츠를 꺾고 창단 3년 만에 NB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북미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단기간 리그 챔피언십 우승 기록 중 하나이다.
벅스는 1970년대 전반기에 강팀으로 군림했다. 1972년, 알신도어는 공식적으로 이름을 카림 압둘자바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벅스는 3년 연속 디비전/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지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패했다. 1973년에는 NBA 팀 최초로 3년 연속 60승 시즌을 기록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플레이오프에서 일찍 탈락했다. 1974 NBA 파이널에서 보스턴 셀틱스와 다시 만났으나, 7차전 접전 끝에 패배하며 두 번째 우승에는 실패했다. 6차전에서 압둘자바는 연장 2차전에서 "스카이 훅" 슛을 성공시키며 명승부를 연출했지만, 결국 7차전에서 패배하며 2021년까지 NBA 파이널에 다시 진출하지 못했다.
1974-1975 시즌이 시작되면서 압둘자바는 손 부상을 입었고, 다른 부상과 겹치면서 팀은 38승 44패로 디비전 최하위로 떨어졌다. 시즌이 끝나갈 무렵, 압둘자바는 더 큰 시장에서의 활동을 원하며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벅스는 엘모어 스미스, 주니어 브리지먼, 브라이언 윈터스, 데이비드 마이어스를 받고 압둘자바를 레이커스로 보내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2. 2. 1976-1990: 시드니 몬크리프 시대
카림 압둘자바의 이적 이후, 벅스는 여러 시즌 동안 전환기를 겪었지만, 1976년 돈 넬슨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15] 1977년 드래프트에서 벅스는 1라운드 지명권을 3개나 가지고 있었으며, 켄트 벤슨, 마르케스 존슨, 어니 그런펠드를 지명했다. 존슨은 이후 몇 년 동안 벅스의 핵심 선수가 되었고, 1979년에는 신인 시드니 몬크리프가 데뷔했다.[15] 돈 넬슨은 벅스에서 두 번의 NBA 올해의 코치상을 수상했는데, 두 번 모두 팀이 디비전 우승을 차지한 1983년과 1985년이었다.1977년 10월 18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한 압둘 자바는 경기 중 벤슨을 주먹으로 가격하여 손을 다쳤다.[15] 이 사건으로 압둘 자바는 NBA로부터 벌금을 부과받고 20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벅스는 1980년 압둘 자바의 이탈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베테랑 센터 밥 라니에를 영입하고 벤슨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로 트레이드했다. 그 결과, 벅스는 1980년 미드웨스트 디비전 타이틀을 획득했다. 시애틀에게 준결승에서 패배한 후, 벅스는 동부 컨퍼런스의 센트럴 디비전으로 이동했다.
벅스는 시드니 몬크리프, 마르케스 존슨, 폴 프레시, 주니어 브리지먼의 뛰어난 활약과 크레이그 호지스, 테리 커밍스, 리키 피어스, 잭 시크마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 시애틀 슈퍼소닉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합류하면서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센트럴 디비전에서 6번의 연속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11년 동안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벅스는 NBA 파이널에 다시 진출하지 못했고, 매번 보스턴 셀틱스 또는 세븐티식서스에 의해 탈락했다.
197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벅스의 색상은 숲 녹색, 짙은 빨강, 흰색이었다. 1978년에 유니폼에 다양한 녹색 음영을 추가했고, 1985년에는 팀 색상에서 빨강을 제거했다.
1980년대 벅스는 1983년에 NBA 역사상 처음이자 2003년까지 유일하게 7전 4선승제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스윕한 팀이 되었다. 또한 마이클 조던을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만나 승리했으며, 1987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줄리어스 어빙의 마지막 NBA 경기를 개최했다.
1985년, 구단주 짐 피츠제럴드는 건강 문제와 투자자들의 이탈로 인해 팀을 허브 콜에게 매각했다. 밀워키의 사업가이자 미래의 미국 상원의원인 콜은 타지 투자자들이 팀을 인수하여 밀워키에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벅스를 인수했다.
2. 3. 1990-1998: 침체기
1990년대 밀워키 벅스는 프랭크 햄블렌, 마이크 던리비, 크리스 포드 감독 아래 평범한 성적을 거두며 침체기를 겪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7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구단 역사상 최장기간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기록을 세웠다. 1994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글렌 로빈슨을 지명했고, 1996년에는 드래프트 당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신인 레이 앨런을 영입했다. 두 선수 영입에도 불구하고, 팀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7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1993년, 구단 창립 25주년을 맞아 로고와 유니폼을 개편했다. 색상은 녹색, 보라색, 은색으로 변경되었고, 만화 같던 이전 사슴 로고는 더 사실적인 로고로 대체되었다.
1997년, 벅스는 올스타 포워드 빈 베이커를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보내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가드 테렐 브랜든과 포워드 타이론 힐을 영입했다. 또한 대니 포트슨, 조니 뉴먼, 조 울프를 덴버 너게츠로 보내고 센터 어빈 존슨을 받았다. 1997-98 시즌에도 36승 46패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998년 NBA 드래프트에서 벅스는 전체 9순위로 디르크 노비츠키를 지명했지만, 로버트 트레이러와 맞바꿔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했다. 이후 조지 칼 감독을 영입하며 팀 토마스, 샘 카셀을 더해 팀의 성적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2. 4. 1998-2003: 빅3 시대
1998년,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NBA 파이널로 이끌었던 베테랑 코치 조지 칼을 영입하며 반등을 노렸다.[17] 조지 칼 감독과 단장 어니 그런펠드의 지도 아래, 팀 토마스, 샘 카셀과 같은 선수들을 꾸준히 영입했다. 레이 앨런, 카셀, 글렌 로빈슨으로 구성된 '빅3'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며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떠올랐으며, 이 시기는 많은 벅스 팬들에게 "Let It Fly" 시대로 알려지게 되었다.[17]2000-2001 시즌 52승을 거두며 15년 만에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고, 샬럿 호네츠를 꺾고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7차전에서 패배했다.[17]
2001-02 시즌 초, 앤서니 메이슨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하려 했으나, 오히려 팀 케미스트리가 붕괴되며 시즌 중반 4번 시드에서 부진에 빠졌고, 결국 시즌 마지막 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패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17] 시즌 후, 글렌 로빈슨이 애틀랜타 호크스로 트레이드되었다.[17]
2002-03 시즌 동안, 레이 앨런과 로널드 "플립" 머레이를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트레이드하고 게리 페이튼과 데스몬드 메이슨을 영입했다. 이 트레이드로 마이클 레드가 더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했고, 페이튼의 합류로 42승 40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뉴저지 네츠에게 패했다. 오프시즌에 샘 카셀과 어빈 존슨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트레이드되었고, 페이튼은 자유 계약으로 팀을 떠났으며, 조지 칼 감독 또한 해임되면서 빅3 시대는 막을 내렸다.
2. 5. 2003-2013: 마이클 레드와 브랜든 제닝스 시대
2003-04 시즌 이후, 마이클 레드가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18] 2005년 NBA 드래프트에서 벅스는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센터 앤드루 보것을 선발했다.[18] 보것은 밀워키에서의 처음 4년 동안 기복과 부상에 시달렸지만, 점차 벅스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18]2006년, 팀은 40승 42패로 디비전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2006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1승 4패로 패했다.[18] 3월에는 6월에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었던 단장 래리 해리스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발표했고,[19] 4월에는 존 해먼드를 새로운 단장으로 고용했다.[19] 또한, 래리 해리스가 고용한 마지막 헤드 코치였던 래리 크리스토비악이 해임되고 스캇 스카일스가 헤드 코치가 되었다.
2008년 6월 26일, 벅스는 뉴저지 네츠로부터 리처드 제퍼슨을 영입하고, 2008년 NBA 드래프트에서 조 알렉산더를 8순위로 지명했다.[20]
2009년 NBA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벅스는 브랜든 제닝스를 지명했다. 시즌 중반, 벅스는 하킴 워릭을 시카고 불스로 보내고 존 살몬스를 영입했다.[21] 살몬스는 벅스 유니폼을 입고 경기당 평균 19.9득점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제닝스의 활약, 앤드류 보것의 성장, 에르산 일야소바의 기량 향상, 그리고 살몬스 트레이드는 팀을 플레이오프 경쟁자로 만들었다.[21] 벅스는 2010년 4월 6일 시카고 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21]
존 앤더슨에 의해 "Fear the Deer"라는 문구가 만들어졌고,[22][23] 이는 NBA 플레이오프에서 팀의 전투 구호가 되었다. 벅스는 정규 시즌을 46승 36패로 마쳤고, 2010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애틀랜타 호크스에게 패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24]
2010-11 시즌, 벅스는 동부 컨퍼런스에서 9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24] 2012년 3월 13일, 벅스는 보것과 스티븐 잭슨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트레이드하고 몬타 엘리스, 에크페 유도, 콰미 브라운을 받았다. 2012년 NBA 드래프트 전에는 1라운드 지명권, 숀 리빙스턴, 존 브록먼, 존 로이어를 휴스턴 로케츠로 보내고 1라운드 지명권과 사무엘 달렘버트를 받았다. 2012년 드래프트에서 벅스는 도론 램과 존 헨슨을 지명했다.
2012-13 시즌 32경기가 끝난 후, 벅스는 스캇 스카일스 감독을 해고하고 짐 보일란을 임시 감독으로 선임했다. 벅스는 38승 44패를 기록하며 8번 시드로 2013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마이애미 히트에게 4대0으로 완패했다.
2. 6. 2013-현재: 야니스 아데토쿤보 시대
2014년 4월 16일, 오랜 기간 구단주였던 허브 콜이 벅스를 뉴욕에 기반을 둔 자산가 웨슬리 에덴스와 마크 라슬리에게 5억 5천만 달러에 매각하는 데 합의했다. 신임 구단주는 팀을 밀워키에 남기고 1억 달러로 새 아레나를 건설할 것으로 보인다[87]。NBA의 승인은 한 달 뒤인 5월 16일에 내려졌다.[88]새 구단주들은 리그 최악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 팀을 재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우선 브루클린 네츠의 헤드 코치였던 제이슨 키드를 2015년과 2019년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과 맞바꿔 헤드 코치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2014년 NBA 드래프트에서 듀크 대학교의 자바리 파커를 지명하는 등, 체제를 정비했다. 새롭게 태어난 벅스는 전 시즌 15승에 그쳤던 팀이 11월에 10승을 기록했다. 그 후 12월 16일 피닉스 선스와의 경기에서 벅스 재건의 주축이었던 자바리 파커가 왼쪽 무릎 전방 십자 인대 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되는 사고를 겪었고[89], 또한 래리 샌더스가 문제를 연발하고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전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야니스 아데토쿤보, 크리스 미들턴 등 젊은 선수들이 분전하여 2015년 2월 11일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전 시즌의 두 배인 승리(30승)를 기록했다. 올스타전 이후 고전했지만, 4월 11일 브루클린 네츠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2009-10 시즌 이후 시즌 40승을 거두며 2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시카고 불스와의 1라운드 대결은 3연패 후 2연승을 거뒀지만, 2승 4패로 아쉽게 패했다.
|thumb|right|130px|야니스 아데토쿤보
그렉 먼로를 영입하며 팀 전력 강화에 힘썼지만, 2015-16 시즌 벅스는 초반 부진을 겪었다. 11월 14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의 경기에서는 2차 연장전 끝에 108-105로 8연승 중이던 캐벌리어스에게 승리했고, 12월 11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경기에서는 전 시즌 NBA 챔피언에게 108-95로 승리하여 개막 24연승 중이던 워리어스의 쾌속 질주를 막는 대이변을 연출[90][91]했지만, 결국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3월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으며 33승 49패로 시즌 초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를 기록했다.
2016-17 시즌은 크리스 미들턴이 개막부터 결장하는 어려움 속에서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새로운 에이스로 급성장했고, 루키 말콤 브로그던도 식스맨으로 분투했다. 개막부터 끈기 있는 경기를 펼치며, 2017년 1월 10일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경기에서 적지인 AT&T 센터에서 109-107로 승리하며 2011-12 시즌 이후 스퍼스전 승리를 기록했지만, 이 스퍼스전 이후 부진에 시달렸다. 그러나 2월에 자바리 파커가 다시 왼쪽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이후 컨디션을 회복했고, 아데토쿤보는 2004년의 마이클 레드 이후의 NBA 올스타 게임 출전 멤버로 선정되었다. 팀은 42승 40패로 2009-10 시즌 이후 5할 이상의 승률로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에서는 1라운드에서 토론토 랩터스에게 2승 4패로 졌지만, 쏜 메이커가 시즌 후반부터 선발로 기용되는 등, 알찬 시즌이 되었다.
2017-18 시즌은 시즌 초반인 2017년 11월 10일에 그렉 먼로와의 트레이드로 에릭 블레드소를 영입했고[92], 2018년 1월 22일에 제이슨 키드가 헤드코치에서 해임되는 등의 일이 있었다[93]. 결국 정규 시즌은 44승 38패로 컨퍼런스 7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컨퍼런스 2위의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최종 7차전에서 패배하며 1회전에서 탈락했다[94].
|150px|thumb|right|마이크 부덴홀저
2018-19 시즌은 홈 구장을 파이서브 포럼으로 옮겨 시작했다. 이 해부터 지휘봉을 잡은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은 야니스의 골밑 결정력을 활용하기 위해 슈터들을 많이 배치하는 전술을 펼쳤다. 미들턴, 블레드소에 더해 3년 차인 말콤 브로그던, 새로 합류한 브룩 로페즈가 3점 슛을 많이 던지는 새로운 팀은 예상 이상으로 잘 굴러갔고, 개막 7연승 이후에도 순조롭게 승리를 거듭했다. 가능성을 느낀 팀은 이 해에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시즌 중에도 조지 힐, 니콜라 미로티치를 영입하여 전력을 더욱 강화했다. 후반에 한 번 2연패를 기록했지만, 그 외에는 한 번도 연패하지 않고, 이 해 리그 최다 승인 60승 22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연간 60승은 1980-81 시즌 이후 38년 만의 좋은 성적이다. 또한, 이 해 올스타에서는 야니스가 캡틴으로 선정되었고, 미들턴도 처음 출전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도 쾌진격은 이어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4승 0패로 꺾고 18년 만에 플레이오프 1회전을 통과했다. 이어진 보스턴 셀틱스와의 2회전에서는 첫 경기를 홈에서 패했지만, 곧바로 전열을 정비하여 4연승하며 4승 1패로 승리, 전년도의 설욕을 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벅스는 토론토 랩터스와의 결전에 임했다. 1차전은 로페즈가 29득점을 올렸고, 2차전은 어산 일야소바가 활약하며 2연승으로 시작했다. 원정인 3차전에서도 후반에 따라붙었지만, 자유투를 많이 실패한 것이 발목을 잡아 재연장 끝에 패배했다. 여기서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기세를 잃은 벅스는 4차전에서 대패했고, 홈에서 열린 5차전도 졌다. 지면 끝나는 6차전은 후반까지 우위를 점했지만, 3쿼터 후반의 15점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했다. 결과적으로 2연승 후 4연패를 기록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탈락했다.
2019-20 시즌도 개막부터 선두를 독주하며, 2년 연속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하며 의기양양하게 플레이오프에 임했다. 8월 26일 제이콥 블레이크 총격 사건에 항의하여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이콧했다[95]. 이후 1회전에서 올랜도 매직을 4승 1패로 물리쳤지만, 준결승에서 정규 시즌부터 상성이 좋지 않았던 마이애미 히트에게 3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4차전에서 야니스가 부상으로 퇴장. 이 경기는 미들턴의 활약으로 연장전 끝에 간신히 승리했지만, 야니스가 결장한 5차전에서 패배, 작년의 설욕을 하려던 플레이오프는 너무 이르게 막을 내렸다.
예상 밖의 조기 탈락으로 야니스의 이적 등도 소문이 돌면서, 프런트는 야니스를 붙잡기 위해 보강을 펼쳤다. 플레이오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블레드소를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보내고, 펠리컨스에서 드류 할러데이를 영입했다. FA에서도 바비 포티스나 브린 포브스 등을 영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러한 보강으로 야니스는 2020-21 시즌 개막 직전에 5년 간의 슈퍼맥스 계약을 맺으며 계약을 연장했다. 시즌 중반에는 P. J. 터커를 영입하고 할러데이와도 맥스 계약을 맺어 야니스, 미들턴, 할러데이의 빅3를 중심으로, 야니스의 전성기에 모든 것을 거는 형태가 되었다. 이 시즌은 컨퍼런스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1회전에서 전년도에 패한 히트와 다시 대결했다. 오버타임까지 가는 1차전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일방적인 전개가 이어졌고, 4연승으로 전년도의 설욕을 했다. 컨퍼런스 준결승에서는 케빈 듀란트, 카이리 어빙, 제임스 하든의 빅3를 보유한 브루클린 네츠와 대결했다. 원정 2연패로 시작했지만 홈에서 열린 3차전, 4차전에서 연승했다. 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졌고, 오버타임 끝에 승리했다. 컨퍼런스 결승에서는 애틀랜타 호크스와 대결. 4차전에서 야니스가 무릎 부상을 입어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남은 멤버들이 분전하여, 2승 2패에서 야니스 없이 5차전, 6차전을 연승하며 NBA 파이널 진출을 결정지었다. 파이널에서는 첫 우승을 노리는 피닉스 선스와 대결. 야니스가 복귀했지만, 적지에서 2연패로 어려운 시작을 했다. 그러나 거기서 3연승하며 단숨에 챔피언십까지 1승만을 남겨두었고, 홈에서 열린 6차전에서 야니스가 50득점 14리바운드 5블록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105-98로 승리했다. 50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2. 6. 1. 2013-2018: 제이슨 키드 감독
2013년 6월 27일, 밀워키 벅스는 2013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5순위로 그리스 출신 포워드 야니스 아데토쿤보를 지명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29]2014년 4월 16일, 벅스의 오랜 구단주였던 허브 콜은 팀의 과반수 지분을 뉴욕에 기반을 둔 억만장자 웨스 에덴스와 마크 라스리에게 5억 5천만 달러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콜은 팀의 상당한 소수 지분을 유지했다. 새로운 구단주들은 팀을 밀워키에 남겨둘 것으로 예상되었고, 구단을 위한 새로운 경기장 건설에 1억 달러를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25] NBA 이사회 승인은 한 달 뒤인 5월 15일에 나왔다.[26]
2014년 7월 1일, 밀워키 벅스는 브루클린 네츠로부터 제이슨 키드의 코칭 권리를 확보했다. 그를 영입하면서 팀은 래리 드류 코치를 해고했다.[29]

벅스는 구단주, 코치진, 팀 재건을 위한 젊은 선수 영입 등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2014-15 시즌의 새로운 슬로건을 "''미래를 소유하라''"로 정했다. 벅스는 2014-15 시즌을 41승 41패로 마쳤다. 이전 시즌보다 26승을 더 거둔 것은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벅스는 동부 컨퍼런스 6번 시드로 2015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1라운드에서 시카고 불스를 만나 6경기 만에 패했다.
2015-16 시즌 벅스는 33승 49패로 한 단계 후퇴했지만, 야니스 아데토쿤보는 시즌 후반에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5개의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다.
2016년 9월 19일, 벅스와 야니스 아데토쿤보는 4년 1억 달러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
2018년 1월 22일, 벅스는 2017-18 시즌에 23승 22패를 기록한 제이슨 키드를 해고했다. 벅스 어시스턴트 코치 조 프런티가 시즌 잔여 기간 동안 키드의 임시 대체자로 발표되었다.[36]
2. 6. 2. 2018-2023: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
2018년 5월 17일, 밀워키 벅스는 전 샌안토니오 스퍼스 수석 코치이자 전 애틀랜타 호크스 감독인 마이크 부덴홀저를 새로운 감독으로 발표했다.[37] 2018-19 시즌은 홈 구장을 파이서브 포럼으로 옮겨 시작했다.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은 야니스 아데토쿤보의 골밑 결정력을 활용하기 위해 슈터들을 많이 배치하는 전술을 펼쳤다. 크리스 미들턴, 에릭 블레드소에 더해 3년 차인 말콤 브로그던, 새로 합류한 브룩 로페즈가 3점 슛을 많이 던지는 새로운 팀은 예상 이상으로 잘 굴러갔고, 개막 7연승 이후에도 순조롭게 승리를 거듭했다. 벅스는 60승 22패로 리그 최다승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연간 60승은 1980-81 시즌 이후 38년 만의 좋은 성적이다.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4승 0패로 꺾고 18년 만에 플레이오프 1회전을 통과했다. 이어진 보스턴 셀틱스와의 2회전에서는 첫 경기를 홈에서 패했지만, 곧바로 전열을 정비하여 4연승하며 4승 1패로 승리, 전년도의 설욕을 했다. 토론토 랩터스와의 결전에서. 1차전은 로페즈가 29득점을 올렸고, 2차전은 어산 일야소바가 활약하며 2연승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원정인 3차전에서 패하며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기세를 잃은 벅스는 4차전에서 대패했고, 홈에서 열린 5차전도 졌다. 결국 2연승 후 4연패를 기록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탈락했다.
2019-20 시즌도 개막부터 선두를 독주하며, 2년 연속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임했다. 8월 26일 제이콥 블레이크 총격 사건에 항의하여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이콧했다[95]. 이후 1회전에서 올랜도 매직을 4승 1패로 물리쳤지만, 준결승에서 마이애미 히트에게 3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4차전에서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부상으로 퇴장. 5차전에서 패배, 작년의 설욕을 하려던 플레이오프는 너무 이르게 막을 내렸다.
야니스 아데토쿤보는 2020-21 시즌 개막 직전에 5년 간의 슈퍼맥스 계약을 맺으며 계약을 연장했다. 벅스는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에서 드류 할러데이를 영입했다. FA에서도 바비 포티스나 브린 포브스 등을 영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시즌 중반에는 P. J. 터커를 영입했다. 이 시즌은 컨퍼런스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1회전에서 전년도에 패한 히트와 다시 대결했다. 4연승으로 전년도의 설욕을 했다. 컨퍼런스 준결승에서는 브루클린 네츠와 대결했다. 원정 2연패로 시작했지만 홈에서 열린 3차전, 4차전에서 연승했다. 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졌고, 오버타임 끝에 승리했다. 컨퍼런스 결승에서는 애틀랜타 호크스와 대결. 4차전에서 야니스가 무릎 부상을 입어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남은 멤버들이 분전하여, 2승 2패에서 야니스 없이 5차전, 6차전을 연승하며 NBA 파이널 진출을 결정지었다. 파이널에서는 첫 우승을 노리는 피닉스 선스와 대결. 야니스가 복귀했지만, 적지에서 2연패로 어려운 시작을 했다. 그러나 거기서 3연승하며 단숨에 챔피언십까지 1승만을 남겨두었고, 홈에서 열린 6차전에서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50득점 14리바운드 5블록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105-98로 승리했다. 50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thumb|250px|2021년 백악관에서 챔피언십을 축하하는 밀워키 벅스 선수들]]
|thumb|right|130px|야니스 아데토쿤보
2023년 5월 4일, 2023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마이애미 히트에게 패배한 후, 벅스는 부덴홀저의 해임을 발표했다.[49]
2. 6. 3. 2023-현재: 코칭 스태프 교체와 데미안 릴라드 영입
2023년 6월 5일, 밀워키 벅스는 전 토론토 랩터스 코치였던 애드리안 그리핀을 새로운 헤드 코치로 임명했다.[50] 2023년 9월 27일, 벅스는 3자간 트레이드를 통해 7번의 올스타 포인트 가드인 데미안 릴라드를 영입했다.[51][52]2024년 1월 23일, 벅스는 그리핀을 43경기만에 해고했다.[53] 1월 26일, 벅스는 닥 리버스를 새로운 헤드 코치로 임명했다.[54]
3. 역대 홈경기장
경기장 | 사용기간 | 수용인원 | 장소 | 비고 |
---|---|---|---|---|
밀워키 벅스 | ||||
메카 아레나 | 1968년~1988년 | 10,783명 | 위스콘신주 밀워키 | #넘겨주기 |
위스콘신 필드 하우스 | 1970년, 1971년, 1973년 | 7,540명 | 플레이오프때 홈경기로 사용함. | |
BMO 해리스 브래들리 센터 | 1988년~2018년 | 18,717명 | 브래들리 센터 (1988년~2012년) | |
파이서브 포럼 | 2018년~현재 | 17,500명 | #넘겨주기 |
4. 영구 결번
1986년~1987년